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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1-17] The Normal Thing

The Normal Thing

게임을 만드는 것이 쉬워졌다. 게임을 만들기 위해 사용하는 여러 툴들은 진입장벽과 난이도를 낮추고, 다양한 가이드로 비전공자도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발전해오고 있다. 굉장히 좋은 일이다.

하지만 최근에는 이렇게 만들어지는 많은 게임들이 크게 놓치는 부분에 대해 생각을 많이 하곤 한다. 최근에 했던 게임을 하면서 느낀점을 크게 두가지 관점으로 몇가지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The Normal Thing

최근에 The Normal Thing이라는 게임을 플레이했다. 텀블벅에서 펀딩에 성공하고, 스팀에 무료로 출시한 퍼즐 어드벤쳐 게임이다. 흥미롭게 통일되어 매력적인 비주얼의 게임이 무료로 출시되어 굉장히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하지만 플레이하면서 첫 퍼즐에서 큰 어려움을 겪었다. 어떤게 퍼즐이고 어떤게 단서이고 무엇을 해야하는지, 왜 해야하는지에 대해 하나도 이해를 못했다. 이후에도 계속해 같은 어려움을 겪으며 최근 비슷한 인디 게임들과의 공통적인 문제점을 느꼈다.

인디, 펀딩, 퍼즐

스토리를 진행하며 중간에 퍼즐을 푸는 퍼즐 어드벤쳐 게임에서 제일 중요한 두가지는 다음이라고 생각한다.

  1. 매력적인 아트
  2. 퍼즐

가장 핵심적인 아트, 비주얼은 플레이어의 유입을 유도하며 스토리를 녹여낸다. 다음으로 퍼즐은 진행 중간에 등장하여 몰입도를 높이거나 스토리를 진행하는 장치로 사용된다.

최근 인디 게임이 이목을 끌기 위해 매력적인 비주얼을 갖춰 펀딩 등의 마케팅 후 출시하는 전략을 사용함으로써, 이런 방향성이 많이 늘어났다. 그렇기에 비주얼에 기대해 펀딩을 하는 유저의 입장에서는 퍼즐에 대해서는 크게 알 수 없고 비주얼에 기대해 투자를 하는 셈이다.

하지만 유저는 어느정도 퍼즐의 억지성과 개연성 등에 대해서는 크게 신경쓰지 않는다. 게임에서 매력을 느끼는 부분에 대해서 크게 만족하고, 그 외의 단점을 커버해줄 만큼 게임이 매력적이라는 뜻이다. The Normal Thing은 정말 매력적인 비주얼과 스토리로 충분히 그 단점을 커버할 수 있는 게임으로 만족스럽게 개발되었다.

퍼즐의 문제점

그렇다면 왜 비관적인 내러티브로 글을 작성하고 있었을까? The Normal Thing의 퍼즐에 대한 단점을 생각해보고, 극단적인 케이스를 보자.

게임을 진행하며 처음 만난 퍼즐이다. 왼쪽 상단의 눈알을 돌려야 하는데 이에 대한 단서 혹은 무엇을 해야하는지, 왜 해야 하는지에 대해 이해할 수 없었다. 이 문제들을 각각으로 나눠서 보자면,

  • 왜 해야 하는지를 모르겠다.

여기서 가장 의미가 없는 문제점이다. 사실 "왜" 퍼즐을 풀어야 하는지를 몰라도 게임의 진행에는 전혀 문제가 없다. 설명이 된다면 게임의 내러티브에 더 몰입이 잘 될 수 있겠지만 그렇지 않아도 게임을 진행하는데 큰 문제는 없다. 하지만 이 퍼즐을 해결하면 즉시 문제가 해결되는 것도 아니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중간 단계겠지만 해결 뒤 정말 문제가 풀릴까? 에 대한 확신이 없는 것은 다소 아쉽게 느껴졌다.

  • 단서가 없다.

문제점이라고 일반화하기엔 다소 어려운 부분이다. 유저가(내가) 단서를 놓쳤을까? 그럼 그런 것을 하나하나 강제로 떠먹여주는게 맞을까? 역시 기획적으로 게임의 방향성과 타겟 유저층에 따라 크게 달라질 수 있다. 하지만 이 경우에 대해서는 고려가 부족했다고 생각이 들며, 퍼즐에 대한 설명과 이끌어내는 과정이 크게 부족해 보인다.

  • 무엇을 해야하는지 모르겠다.

여전히 나는 이 퍼즐을 어떻게 풀어야 하는지 모른다. 이 퍼즐은 왜 여기에 있을까? 이 구도에 대한 씬을 넣고 싶어서, 였을 것이라 생각한다. 단서가 없다는 것이 가장 크지만, 이 퍼즐을 어떻게 하면 깰 수 있을까? 에 대한 설명이나 피드백이 전혀 없어 감이 잡히지 않는다. 이는 퍼즐이라는 장치를 사용해야만 했고, 그렇기에 퍼즐을 넣었다 정도로 보인다.

이러한 비직관적인 퍼즐은 이후에도 계속해서 나왔고, 퍼즐이 아닌 게임의 진행에서도 문제점은 반복되었다.

플레이어 배려

그렇다면 공통되는 문제점은 무엇이고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대부분의 비직관적인 퍼즐, 게임, UX, UI 등은 하나의 문제점에서 출발한다. 플레이어의 입장에 대한 이해도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이 게임을 처음 접하는 플레이어는 여기서 어떻게 생각할까? 여기서 어떤 행동을 해야할지 생각할 수 있을까? 이 퍼즐을 이해할 수 있을까? 에 대한 고민이 부족한 것이다.

말은 쉽다. 하지만 이는 기획자, UX 디자이너, 마케터 등의 모든 직군의 누구나 생각해보고 겪는 공통적인 과제이다. 하지만 가장 중요하고, 가장 어려운 과제이기도 하다. 플레이어에 대한 고려가 없는 게임은 플레이할 수 없는 게임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기획자로써 일을 할 때 가장 많이 던져보던 질문은 '여기서 유저가 어떻게 생각할까?' 였다. 이러한 메타적인 질문은 내가 알고 있는 지식을 버리고, 유체이탈 후 유저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는 것이라 어딜 가나 설명해주지만, 다 헛소리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을 잊고 가상의 사람에게 빙의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당신이 몬스터의 룽게 경감이라도 되는게 아니라면.

이에 나는 조금 더 로직적으로 접근했었다. 몇 가지 가정을 세우고, 유저가 '알고 있는 것'과 '하고 싶은 것' 등을 스테이트 머신처럼 표현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위 눈알 꽃 퍼즐같은 경우에는 다음과 같은 가정을 세운다.

  • 플레이어는 마우스 클릭을 할 수 있다.
  • 플레이어는 퍼즐 장면이 나왔을 때 이것이 퍼즐임을 인지할 수 있다.

그리고 퍼즐이 등장하는 시점에서 플레이어의 스테이트는 다음과 같다.

  • 알고 있는 것
    • 플레이어는 현재 퍼즐에 대한 단서가 전혀 없다.
    • 플레이어는 현재 퍼즐을 풀면 다음 스테이지로 가기 위한 아이템을 얻을 수 있음을 알고 있다.
  • 하고 싶은 것
    • 플레이어는 다음 스테이지로 가기 위한 아이템을 얻고 싶어 한다.

빌드업이 길었다. 이렇게 현재 상태에 대한 정리가 끝났을 때, 위와 같은 퍼즐이 등장한다면 플레이어는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행동할까? 현재 퍼즐에 대한 단서가 전혀 없기에, 먼저 여러 인터랙션을 시도하고 눈알을 돌려본 뒤, 눈알의 위치를 맞추는 것이 퍼즐임을 알게 될 것이다.

하지만 어떻게 풀어야 하는지는 모를 것이다. 눈알을 돌렸을 때에 대한 피드백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여기서 제일 중요한 것은 바로 "플레이어를 최대한 백지 상태의 스테이트 머신" 정도로 생각하는 것이다. 개발자의 입장에서는 당연하게 느껴지는 것들이 플레이어에게는 당연하지 않을 수 있지만, 여기에서는 당연하지 않다. 고 생각해야 한다.

그렇다면 이 문제는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정해진 방법은 없겠지만 일반적으로 다음과 같이 해결할 것이다.

  • 내러티브와 연결되는 퍼즐의 해결법 제시
    • 꽃이 태양빛을 바라보는 것을 사용하여, 시든 꽃이 태양빛을 바라보아 꽃이 살아나는 것을 이해시킨다
    • 혹은 눈알이 바라봐야 할 직관적인(가장 어려운 단어) 비주얼을 제공한다
  • 인터랙션에 대한 피드백으로 해결법 제시
    • 가장 단순하게는 눈알이 제 위치로 갔을 때 변화를 주어 답을 제시하는 것
    • 여기서 단서를 줄여가면서 무언가 바뀜을 보여주고, 플레이어가 이를 이해하도록 유도하는 것

그리고 각각의 경우에 대해 고려해보고 제일 마음에 드는 방법을 선택할 것이다.

게임의 UX, 플레이어의 이해는 정말 어렵고 정답 또한 없는 과제이다. 하지만 이러한 고려가 있냐 없냐는 큰 차이를 만들어낼 것이다. 이것을 해결하기 위한 방법에는 플레이 테스트와 피드백 등도 있겠지만... 개인적으로 플레이 테스트로 유의미한 결과를 얻는 것은 본 적이 없다. 플레이 테스트는 사실 개발자가 듣고 싶은 말을 듣는 자리가 아닐까...

극단적 케이스

장화홍련이라는 게임이 있다. 리뷰 중 마음에 와닿았던 구절은 작화 좋은 것을 보고 게임 퀄리티도 높을거라 기대하면 매우 실망하게 될것이다 였다. 굉장히 매력적인 비주얼을 가졌지만, 게임 내 퍼즐은 비직관적이고 진행도 굉장히 불친절하여 게임의 몰입도도 떨어지며 플레이하기 힘들었다.

펀딩이 충분한 돈이 되지는 않지만, 비주얼로 펀딩을 받아 출시하는 게임의 게임성에 실망하는 유행이 개선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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